예술과 경제, 두 마리 토끼를 잡은 베토벤

루드비히 판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 1770~1827)의 피아노 소나타 No.23 F단조<열정>을 들어본 적이 있나요?
이 곡은 러시아 혁명을 이끈 지도자 블라디미르 레닌(Vladimir Lenin)의 ‘인생 음악’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레닌은 고전 음악을 귀족의 문화라고 여겨 일부러 멀리했지만, 이 곡만큼은 혁명의 의지를 일깨워 준다며 자주 들었다고 합니다.
철혈 재상이라고 알려진 독일의 오토 폰 비스마르크(Otto von Bismarck)도 이 곡을 열정적으로 감상했는데 “듣기만 해도 용기가 영원히 고갈되지 않을 것 같다”는 감상평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베토벤의 음악에는 시대와 사상을 초월해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는 힘이 있습니다.
음악가로서 베토벤의 업적보다 한 인간으로서 그가 어떠한 경제 관념을 갖고 있었는지에 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먹고사는 문제는 시대를 초월한 인류 공통의 과제입니다. 베토벤 또한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베토벤은 다른 음악가들에 비해 경제 관념이 투철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베토벤은 예술가로서의 삶을 유지하기 위해 연주회를 통한 수입으로 경제적 안정을 확보하고자 노력했습니다.
베토벤이 활동한 시기의 대다수 음악가는 귀족이나 왕실에 소속되어 월급을 받으며 그들의 요구에 맞는 곡을 작곡해야 했고, 그들이 원하면 밤낮 없이 연주해야 했습니다.
베토벤의 아버지와, 베토벤의 스승인 프란츠 요제프 하이든(Franz Joseph Haydn, 1732~1809) 역시 궁정 악단의 일원이었습니다.
특히 하이든은 에스테르하지(Esterházy) 가문에서 월급을 약 30년 동안이나 받았습니다. 그러나 베토벤은 자신만의 음악적 세계를 구축하기 위해 자유음악가의 길을 개척했습니다.
자유 음악가란, 왕실과 귀족에게 소속되지 않고 자신만의 음악 세계를 구축한 음악가를 의미합니다.
베토벤은 소수의 부유한 귀족이나 왕실을 위한 음악이 아닌, 모든 계층의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음악을 작곡하기를 원했습니다.
베토벤은 자유 음악가를 실현한 최초의 음악가로, 이후의 음악가들은 귀족이나 왕실의 전유물이 아닌 대중과 소통하는 예술가로 거듭날 수 있었습니다.